AS: <자가 감정 추수 장치>에서 언메이크랩은 라즈베리파이에 연결된 캠 앞에 스스로를 데이터 추출을 위한 객체로 세우고, (윤원화 비평가의 표현을 빌려오면) 일종의 “생체 실험”을 수행했다. 카메라라는 광학적 장치에는 늘 남성적 시각성의 권력이 그 몸을 숨긴채 작동해오지 않았는가. 이러한 비판적 생각 때문인지, 컴퓨팅 광학 장치 앞에 선 비규범적 외양의 여성 작가들의 이 행위가 보는 나를 흥분시키는 지점도 있었다! 현실의 컴퓨팅 비전은 그 “없는” 논리나 개연성을 넘어서 (이분법적 성차 관념을 포함한) “체계를 조정”하는 폭력을 계속해서 답습하고 심지어 촉진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이러한 생각이나 반응이 여전히 기계와 광학을 ‘기계적이거나 광학적으로’ 보지 못하는 인간적 사고의 한계 같기도 하다. 데이터 기반의 컴퓨터 비전에 관한 우리의 인식에 언메이크랩이 일으키고자 하는 충돌과 오류에 관해 더 듣고 싶다. <시시포스 데이터셋>이나 <유토피아적 추출> 작업 이후에 어떤 새로운 비판적 감각을 날세우고 있는지? 또 대부분 남성인 코더들의 실태를 지적하며, 전유진 작가에게 했던 “여성 중심으로 어떤 프로그램 언어를 만들었다면 여성들은 효율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봤을까?”(Code for Love, p.79)라는 질문에 이번에는 언메이크랩이 답을 해 본다면?
UL: 데이터셋 그리고 인공지능은 분명 기존의 분류 체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상속받는 측면이 강하다. 그것이 워낙이 대규모 데이터로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 감각으로는 걸러내기에 한계가 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문화 속에 포함된 편견 그대로 학습하는 경향도 여전하다. 한편으로는 문제 있는 데이터들을 단지 윤리적 잣대로 삭제해 버리려는 생각을 넘어 다양한 관점의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것을 최근에 발견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러한 비판들이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있고 컴퓨터 과학자들도 책임감 있게 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러한 변화를 존중감을 가지고 보게 된다. 그럼에도 큰 흐름에서는 세계가 계산적 속성으로 재편되는 것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흐름에 반대하는 것은 기술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란 생각을 하는 편이고. 단지 좀더 이 사회에 이식되는 구체적 정황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한 사회에 특정한 기술적 시스템이 이식될 때는 늘 그 사회의 존재하고 있는 결이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사회의 결이 기술과 일으키는 마찰이나 혼성 같은 것들에 계속 관심을 갖게 될 것 같다. 그 안에는 기계 시각뿐 아니라 다양한 기술적 요건, 공간, 상황이 배치될 수 있을 거 같다.